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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1. 23:46

BOOK: 능력자, 최민석 장편소설 읽고보고듣고2012. 12. 11. 23:46

능력자


역시, 빨간책은 재미있다.

마치 술자리에서 말빨 좋은 선배의 17대 1 싸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묘하게 슬프고 묘하게 재미있다. 어느새 빠져들어 버렸다.



1. 허풍

이 책의 말투는 허풍이다. 허풍스런 말투가 주는 이 책의 재미에 푹 빠졌다. 외워서 써 먹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말투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설프게 따라할 차원이 아니다.


망치 네놈이 코 흘리던 시절 나한테 얻어 먹은 밥이면 대한민국 김밥천국 전 체인점이 동시에 김밥을 말고도 남을 것이고, 그 남은 밥을 냉동시켜 바닥에 깔아 놓으면 설 땅을 잃은 북극곰들이 평생 굴러 다녀도 끝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얻어 마신 술이면 에버랜드 워터파크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며, 그 남은 물을 얼려 바다 위에 띄워 놓으면 아까 그 북극곰이 북극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옛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2. 왜 빨간책인가

이 책의 작가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빨간책”은 음란물이었거나 불온서적이었다. 허가 받지 않은 책,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따라 배포되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의 느낌도 딱 그렇다. 교실에서 손에서 손으로 건네와 순서를 기다리며 읽는 야설 처럼 진지하지 않게 막 써내려간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말 말로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게다가 주인공의 직업 중 하나가 야설 작가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은근하고, 친근하고, 측은하고,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인듯 느껴지면서 고상하게는 느껴지지 않는 딱 그 느낌이 빨간책 이미지와 잘 맞다.



3. 자전적 소설

진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지,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만든 소설인지, 그 두 가지가 복합적인 것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어느 쪽이든 상관 없긴한데,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책 표지에 소개된 작가의 프로필과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작가가 잘 겹친다. 그래서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옆 반에 있는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4. 공감하면서 멈칫하게 했던 부분..

부분만 발췌하니 전체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긴 하다. 전체 속에 포함된 이 문장들 느낌이 좋다.


“삶에 있어서 때론 자신의 능력 밖의 것은 그저 낙관으로 일관하고 나머지 결과는 삶의 흐름에 던져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공간의 범위는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 개념이며, 그 넓이 역시 신체가 움직이며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떠다니며 규정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광장에서 바람에 의해 크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방 한편에서 몸을 웅크린 채 수치(부끄러움)에 의해 크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야. 어떻게 지느냐? 그래, 중요해. 사람들은 어쩌면 그걸 내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모습이 근사하지 않더라도, 초라하더라도, 보잘것 없더라도 상관없어. 헐렁한 트렁크스, 조명, 땀 냄새, 훈련, 실패로 터득한 내 스텝, 그걸 기다리는 링.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 위에 있을 때, 나는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거든.”


“너절해져도 찢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작가의 말 중에서


“당신이 만약 비극을 겪고 있다면, 그 비극이 진심으로 희극이 되길 바란다. 생이란 그래야 한다고 애타게 믿고 있다.”



5. 그래서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랄까, 내가 하는 일이 다 고만고만해서 “하면 뭐하나~” 라는 병에 걸렸을 때 이 책이 병을 고쳐줄 것 같다. 절실함, 삶에 대한 투지가 다시 타오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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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