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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물품화폐에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선물본능'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지. 돈이 교환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순간, 그 본능은 흔적도 없이 증발되어 버린다. 바야흐로 이 원초적 본능을 되살릴 수 있는 경제적 노하우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물품들간의 활발한 순환에 접속하거나 아니면 돈을 선물로 변환하여 거대한 순환을 이루거나. 현대인들은 모두 그렇지만, 특히 우리 시대의 마이너, 청년 백수들에겐 그야말로 꼭 필요한 삶의 지혜가 아닐런지.


-- 공부 --

공부복과 학벌은 전혀 다른 범주다. 학벌은 공부복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부가 그토록 고달픈 거다.


뭘 배운다고 직업이 생길리 만무하고 신기록을 세운다고 메달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아무 이유 없다! 굳이 찾는다면, 시간이 남아돈다고나 할까. 노느니 장독 깬다는 말이 있듯이, 그냥! 배운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그리고 그게 일상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기적이 일어난다. 천민 백수들이 각 방면의 최고 고수이자 달인으로 재탄생하는 기적이.


달인이 되려면 이것저것 대충 해선 안 되고 관문 하나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분야가 뭐건 다 마찬가지다. 요즘 선수들은 금메달, 그 뒤에 오는 영광(주로 돈!)에 대한 유혹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 힘든 코스를 다 견뎌낸다. 이런 게 전혀 없다면? 아마 아무도 안 할 것이다. 만약 그런데도 할 수 있다면, 그 재주는 단지 기예가 아니라,인생역전의 비전이 된다. 무용함의 유용함, 목표 없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금메달을 따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도 부와 인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우리 시대 선수들을 보라! 목표가 뚜렸하다는 게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일상적 공부를 통해 그들은 달인이 되었다. 놀이가 공부고 공부가 곧 일상이 되면 누구나 한 방면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 장난으로 시작한 것인데 물건을 노리구 던지면 맞는 데 재미가 날뿐더러 그것도 혹시 재주루 쓸데가 있을까 하구 일심 정력을 들여서 익혔습니다.


근대 이전은 구술문화의 시대다. 모든 것이 구술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에 반에 우리 시대는 서사가 사라졌다. 자신의 일상, 자신의 인생, 자산의 배움이 모두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이다. 동시에 청각도 잃어버렸다. 자신의 속내와 인생역전을 멋들어지게 이야기할 줄도 모르지만, 남의 사연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줄도 모른다.


스승은 뭔가를 가르쳐주는 이라기보다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최대한 끌어내는 존재일 뿐이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스승을 부르는 것이지, 좋은 스승이 있어서 잘 배우게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아무리 스승이 위대하다 해도 최종심급은 결국 제자 자신의 국량인 것이다.


일신, 이기, 삼태, 사술 ... 술은 배울 수가 있고, 태는 지을 수가 있고, 기는 기를 수가 있고, 신은 배우거나 짓거나 길러서 될 수 없는 만큼 천생이 있지마는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써 기르면 나중에 절로 생긴답니다.


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친절은 금물이다. 그래서 아무나 다, 그리고 공평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문턱을 넘어오는 만큼만 가르쳐준다. 자신을 구원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일 뿐이니까.


모든 공부와 수행의 기초, 그건 바로 청소다. 스승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재능이나 선물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소박한 실천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상이 필요없다. 사랑하는 순간 이미 천국을 경험하게 되니까. 그렇다면 공부에도 목적이나 이유, 대가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공부하는 순간, 이미 삶은 축제가 되니까. 그리고 그 축제의 절정이 바로 평상심이다.


즐겁지 않으면 배움이 아니고, 배우지 않으면 즐거움도 없다. 즐거운 연후에나 배운 것이고, 배운 연후에나 즐겁다. 고로, 즐거움이 배움이고 배움이 곧 즐거움이다.


-- 우정편 --

'양반이되 양반티를 내지 않고, 고리삭은 글 이야기를 하지 않고 힘깨나 쓰고 꺽정이 나이가 배가 어린데도 동무처럼 상종하게 되었다.' 그렇다! 친구가 된다는 건 신분이나 나이, 지식 등과 같은 사회적 경계를 넘어 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의학적으로 간신(肝腎, 간장과 신장)은 결단과 용기를, 비위(脾胃, 비장과 위장)는 생각을 주관한다. 건강한 신체란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없음을 의미한다. 요컨데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그만큼의 잉여가 몸에 쌓이게 된다. 그 잉여가 바로 번뇌와 질병을 낳는다. 지행합일 혹은 언행일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과 몸의 어울림과 맞섬에도 수 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머리로, 입으로 재지 말고 몸으로 부대껴보라는 것.


이들은 절대 착하고 좋은 '놈'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좋은 사람들이라 서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기에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우정은 철두철미 연대의 윤리다. 이 연대의 정서가 무너지면 또다른 권위와 위계가 생겨나고 그러면 또다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형성되고 만다.


-- 사랑과 성 --

배짱이란 다른게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나 권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실존적 결단력이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군더더기가 붙고 폼을 잡는 순간, 사랑은 졸지에 '망상의 늪'으로 떨어진다.


-- 여성 --

배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장모들의 파워가 막강했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생활의 전 영역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과 존재 사이에 간극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일단 힘과 기운이 엄청 좋아진다. 쓸데없는 망상 따위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恨)은 가슴에 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외부로 털어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복수가 끝난 후, 전혀 다른 삶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의 모든 여성들이 그토록 위풍당당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공공연한 네트워크 덕분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결혼의 과정에서 둘만의 사적인 관계를 고수하는 건 서로에게 아주 불리하다. 특히 여성에겐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성욕의 쾌감이 끝나는 순간, 모든 관계가 스탑되기 때문이다. 고로, 아주 역설적인 말이지만 둘이 깊이, 오래 사랑하기 위해선 반드시 드넓은 배경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빛나게 해주는 우정과 의리라는 배경이.


-- 사상 --

소인배들 역시 사대부요 성리학의 문도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학문이란 오직 부귀공명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글자 배운 보람”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죽음이 저토록 초라한 것은 그야말로 필연적 귀결이다. 또 죽음이 저렇게 초라할진대, 그 삶 또한 오죽했으랴. 부귀를 맘껏 누리지 않았느냐고? 맞다. 허나 부귀가 줄 수 있는 건 쾌락과 방탕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또 쾌락과 방탕이란 결국 욕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서는 욕망의 노예로, 죽음 앞에선 비루먹은 개로. 이게 성공한 소인배들이 밟아가는 괘적이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란 부귀도 공명도 아니고, 요절도 장수도 아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에 있을 뿐이라고. 물론 이 자유의 공간은 배움의 능력과 정확히 비례한다.


감정을 다스리고, 섹스를 절제하며, 담백한 음식을 먹고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지 말 것 등이다. 핵심은 욕망의 금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다. 왜? 그 거품이 곧 번뇌와 질병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결국 탐욕에 눈이 어두우면자기가 듣고 싶은 내용만 듣게 되는 법이다.


-- 조직 --

갖바치는 도가 깊어질 수록 자신의 존재 기반을 벗어날 수 있지만, 꺽정이는 적대감이 커질 수록, 청석골의 전투력이 강화될수록 자기가 증오해마지 않는 세력들과 맞물리게 되어 있다. 미움과 증오는 그것이 생겨난 인연처를 결코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분노가 강해질수록 그 대상과 오버랩되어 버린다. 하여 니체가 그랬다던가. 괴물과 싸울 땐 괴물을 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형식적 체계는 느슨하기 이를 데 없지만, 구체적인 활동성은 엄청 센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그게 가능한 건 이들이 다 한가닥하는 달인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명령의 전달자가 아니라 실행자들이다.


어떤 체제가 파쇼적이 되지 않으려면 강령이나 조직표가 아니라, 무엇보다 축제와 유머, 그리고 서사가 필요하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외부와 접속할 수 있는 유연성 혹은 탄력성이다. 외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최소한의 규모로도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법이니.


자유인이 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철학적 비전, 또 하나는 신체적 능력. 물론 둘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토론하는 것.

자유시간은 신체적 능력을 확장하는 정밀한 훈련에 쓰여야 한다.


달인의 능력은 화폐로 교환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선물로 순환되어야 한다.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니체). 그러니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행운들과 기꺼이 대면할 수 있는 배짱과 호기, 다만 그것뿐!



:: 201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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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