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는지, 3층에서 문이 열리자 당연한듯 내린다.
내가 3층이라고 말해주고 다시 태웠다. 아저씨는 1층인줄 알고 내리는 듯 했기 때문이다.
만화방 건물의 윗층에는 9층 건물에 온갖 술집, 룸살롱, 호텔(이름은 호텔이다), 나이트클럽 등이 입주해 있다. 8층에서 부터 내려온 엘리베이터니까 아마 룸~에서 마시다 내려오는 길인가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항상 술 취한 사람들과 같이 타게 되는데 - 주로 밤에 가서 그렇다 -
거기서 근무하시는 듯한 섹쉬한 여자분들도 자주 본다.
다들 술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섞여 엘리베이터 안은 아주.. 묘한 냄새가 베어 있기도 하다.
아저씨는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사이에
연신 "아~ 죄송합니다아~ 제가 술을 쫌~ 많이 마셔서어~ 실수 했씀다아~~" 하신다.
나도 "네.. 네~~" 한다.
상하 모두 까만색 옷에, 덩치 좋은 아저씨들이 입으면 영락 조폭 느낌이 나는 폴라티에
- 이건 몸에 좀 끼게 입고, 목 부분은 절반 정도만 올라온다 -
인상도... 태권도 선수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도 짧고... 나이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아 보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라고 말하며 술에 관한 어떤 말씀을 하셨다.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건성으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는 쫄았다. -_-; 무서웠다.
아마, 여자친구 집에 인사하러 가서 처음 아버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1층에 내려서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저씨는 술을 많이 드셨다는 게 많이 미안한 모양이다.
나한테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계속 미안해 하신다.
영업용 미소로 접대용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을까...
그래서 가짜 웃음을 상대에게 보이고 나오는 길이 못내 미안한 것이었을까...
"안녕히가세요~"
아저씨가 하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 나도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도 정중하게 인사하신다.
조금 더 있었다간 악수까지 하고 헤어졌을지도 모를, 그런 분위기였다.
쌀쌀한 바람이 몸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지만
광장을 가르질러 걷는 동안은 쫄았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머리가 시원할 만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흐흐~
외모와 상황이 일치하지 않았던 재미있는 아저씨...
블로그에 꼭 써야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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