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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9. 17:00

칼럼: 궁극의 감성로봇 by 92012. 5. 9. 17:00



밋밋한 박스에 스위치가 하나 있다. 이 스위치를 켜면 박스에서 막대가 나와 스위치를 밀어 끄고, 다시 박스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잠해진다. 생뚱 맞지만 이것이 하는 일의 전부인 로봇이 있다. 일을 하라고 스위치를 켰는데 일을 안하겠다고 스위치를 꺼버리는게 이 로봇의 일이란다. 유튜브의 채널인 “취미로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The Latest In Hobby Robotics)”에 소개된 이 로봇이 궁금해졌다. 로봇이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뭔가 이로운 것을 하는 장치인데 이 로봇은 도대체 무슨 이로운 점이 있는가.

이 로봇은 꽤 다양한 버전으로 발표되고 있다. 만드는 사람이 이 로봇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장 쓸모 없는 기계(Most Useless Machine)”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는 짓이 화난 아이처럼 보인다고해서 “혼자 있게 냅둬 로봇(Leave Me Alone Box)”이라고 하기도 한다. 쓸모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그냥 만사가 귀찮은 것인지 그저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달라는 로봇, 쓸쓸함을 즐기는 고독한 로봇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스스로 일을 그만 둘 줄 아는 로봇이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채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로봇이기도 하다.

최초 명칭은 “울티메이트 머신(Ultimate Machine)” 이었다. 궁극의 기계.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기계란 이래야 한다는거다. 단순 명료하게 더하고 뺄것도 없이 완전한.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자통신 분야의 이론가인 클라우드 쉐넌(Claude E. Shannon)이 만들었다. 그는 컴퓨터 체스의 원리, 미로를 찾는 로봇 쥐의 원리를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시대에는 암호 기술이론으로 활동한, 좀 옛날 사람이다. 그 역시 재미로 만들었다는 울티메이트 머신은 그 단순하고도 재미있는 동작 때문인지 취미로 로봇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프로젝트로, 또 입문과정의 학습 프로젝트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입문과정에서는 구현 원리에, 하드웨어 제작에 치중하는 쪽은 엔틱 케이스나 동작의 우아함을, 소프트웨어 쪽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에 촛점을 맞춘다. 구글이미지로 검색하면 많은 회로도가 공개되어 있으니 회로도를 보고 전구와 스위치를 구분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울티메이트 머신을 직접 만들어 볼만하다. 가장 간단한 버전은 스위치 2개, 모터 1개, 배터리와 딱딱한 케이스로만으로 공작할 수 있다.

전문가 버전으로는 최근에 발표된, 회로사(回路師, Kairoshi)라는 닉네임의 일본 사람이 만든 것이 독특하다. 스스로 스위치를 끄는 동작은 똑같지만 그것 조차 여러번 반복하면 로봇이 화가 난다는 듯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스위치를 건들이지 못하게 한다. 또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주변을 흐트러뜨리고 최후에는 스위치를 박스 안으로 감추어 버리기까지 한다. 초기 버전보다 상당히 히스테릭해지고 과격해졌다. 그런데도 웃음이나고 재미있다. 이 로봇이 가진 근원적인 모순과 비슷하다. 일을 하라고 하는데 꺼버리는 것, 과격해 졌는데 웃음이 나는 것 그런 것 말이다. 싸워서 어색한 친구에게 “네 모습이 이래~” 하고 보여주어도 좋겠다. 스위치를 툭툭 건드리다 보니 분명해진다. 이 로봇은 혼자 있고 싶은 사람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는 궁극의 감성로봇이다.


월간 개벽신문 8호 (2012. 3)
http://dongha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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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