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2012. 5. 9. 17:37

칼럼: 2유로 기계 by 92012. 5. 9. 17:37

2 유로 기계

돈 먹는 자판기가 불쾌하지 않은 이유




독일의 함부르크 공항에 독특한 광고 포스터가 세워졌다. 예쁜 일러스터로 구성된 이 포스터는 그냥 한 장짜리 그림이 아니라 입체 동화책 처럼 그림의 일부가 움직인다. 얼핏 보면 그저 이쁘기만 한 포스터가 “2유로를 가지고 세상을 움직여 보자”는 내용의 기부금 모금함이란다. 도미노 블럭이 하나씩 무너지며 진행하는 것 처럼, 핀볼 기계가 동작하는 것 처럼 이 포스터도 동작한다. 포스터에 들어있는 작은 그림들이 움직이는, 그래서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계다. 2유로를 넣어야 움직이기 때문에 “2유로 기계”라고 불린다.


포스터 위쪽에 커피 자판기 처럼 동전을 넣으면 병원이 세워지고, 엠블런스가 다니고,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우물에서 물이 샘솟고,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대학이 열리고, 라이브 콘서트가 개최된다. 물론, 그림판이 움직이면서 표현하는 것이다. 인형극 처럼, 동화책 처럼 그림들이 움직인다. 동전을 넣은 사람의 모습도 사진 찍는다. 승인하면 기부자 명단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기술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기부금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독특하다.


2유로 기계는 독일의 자선단체인 “미제레오르(Misereor http://misereor.de)”가 세운 기부금 모금 광고다. 미제레오르는 복지와 교육시설, 기아와 재해복구를 지원하는 천주교 기반의 자선단체로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 직후에 많은 도움을 준 인연이 있다.



광고판? 모금함? 이것이 기계라고?


이 광고판의 흐름은 이렇다. 2 유로 짜리 동전을 넣으면 타이틀인 “MIT 2€ VIEL BEWEGEN” 글자가 흔들린다. 직역하면 “2유로와 함께 더 많은 감동을” 정도 되겠다. 동전은 앰플런스의 앞 바퀴 자리에 들어 간다. 경사로를 따라 앰블란스가 전진하면 동전은 앞바퀴가 돌듯 회전한다. 엠블런스가 마을 그림에 도착하면 동전은 아래로 떨어지고, 지렛대를 건드리면서 마른 우물에 물 그림이 채워진다. 동전이 굴러가는 방향을 따라 물동이에 물이 차 오르고 나무가 불쑥 나타난다. 물을 공급하고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꾼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동전이 다음으로 도착한 곳에 카메라 그림이 있다. 그런데 그림 카메라에서 불빛이 몇 번 깜빡이더니 광고판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사진을 찍는다. 그 다음으로 동전이 내려오면 코끼리가 있는 숲의 건물에서 “Schools Open” 푯말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다음 단계로 동전이 떨어지면서 풍차를 돌린다. 풍차가 돌면 마을의 집집마다 불이 켜진다.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연상이 된다. 동전은 이제 아이의 축구공이 되었다. 꼬마가 동전을 드리블 하며 가는 곳은 “UNIVERSITY”. 동전이 대학 건물을 지나면 큰 건물의 창이 열리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공연장을 지나고 동전이 도착하는 곳에 동전을 넣은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난다. 버튼을 눌러 공개에 동의하면 페이스북에 기부자 명단에 등록된다. 동전은 이제 마지막 안내 장치인 손가락을 흔든다. 손가락 모양이 가르키는 곳에 미제레오르의 QR코드가 있다. 내가 넣은 동전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돈을 모아서 집행하는 기관이 어디인지 안내하는 것이다.



광고판에 숨어있는 기술들


포스터의 재미있는 움직임들은 물리적인 기계 장치와 전자장치의 동작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인 기계장치는 동전이 떨어지면서 건드리는 걸림쇠, 동전이 물체를 끌고 가기 쉽도록 기울어진 경사로, 동전이 떨어지면서 돌리는 풍차의 톱니바퀴 등이다. 그 다음은 카메라를 동작시키고, 사진을 찍고, 사진 데이터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과정들이 전자 회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자장치를 설계한 사람은 알렉산더 위버씨로 프로그램 매니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가 직업이다. 위버씨가 사용한 소프트웨어 기술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라기 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미 발표된 여러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찍는 카메라는 웹캠으로 일반적으로 인터넷 채팅 등에 사용하는 작은 USB 카메라다. 기부금을 낸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등록할지 말지 결정하는 버튼은 USB 키보드를 뜯어서 사용했다. 웹캠을 동작시키는 것은 아르두이노(Arduino)라는 공개 하드웨어 장치와 프로세싱 이라는 언어를 사용했는데, 웹캠을 컨트롤 하는 라이브러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르두이노는 어떤 새로운 장치를 개발하고 테스트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소형 컴퓨터다.


촬영한 사진은 7인치 USB 디스플레이로 출력하고 호스트 컴퓨터인 맥미니(MacMINI)에 설치된 아파치 소프트웨어로 페이스북에 업로드 한다. 인터넷 연결은 3G 스틱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로 보자면 3G 망을 사용하는 인터넷 공유기 정도 되겠다. 물리적인 연결은 이런 정도인데, 위버씨는 여기에 드롭박스를 통해 소프트웨어적으로도 접근성을 용이하게 했다. 드롭박스는 인터넷을 통해 폴더를 공유하는, 파일공유 시스템이다. 역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다. 웨버씨는 드롭박스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로그파일을 들여다 보고, 고장여부를 판단하고 했다. 파일이 자주 변경되면 드롭박스의 업데이트가 잠시 중단된다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지만 2유로 기계의 동작이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기술이 감동을 주는 조건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기술을 사용했다고 해서 위버씨가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간편하고 쉬운 개발 방법을 택했다.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하도록 자신만의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들을 종합해 기능을 구현하는데 적합한 도구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기술이 우아하게 느껴지는 것는 전체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이 동작하는 기술이 우아하다.


2유로 기계의 메인 CPU의 클럭속도가 얼마나 빠른 것이었는지, 카메라로 사용된 웹캠은 몇 만 화소나 되었는지에 따라 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질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기술이 이야기에 숨어 알듯 모를듯 슬쩍 도와줄 때,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나타난다. 기술을 보여주는 포스터에는 감동이 없지만, 감동을 주는 포스터에는 기술이 있다.



참고 :

포스터 제작사 Bomboland (이태리)

http://bomboland.com/

알렉산더 위버 (독일) 블로그에 소개된 2유로 기계

http://tinkerlog.com/2012/03/30/the-2-euros-machine/




월간 개벽신문 9호(2012. 4)

'by 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비효율의 가치, 앰프의 세계  (0) 2012.10.21
칼럼: 펑션형 인간  (0) 2012.07.11
칼럼: 허세로운 생활의 실전 메뉴얼  (0) 2012.05.09
칼럼: 궁극의 감성로봇  (0) 2012.05.09
법화경에 마음을 담다  (0) 2012.02.08
:
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