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1. 11. 18. 20:48

2kStory: 이벤트 극장 by 92011. 11. 18. 20:48

  사무실 문 한테 받은 이벤트 내용은 이렇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남자가 화장실에 간다. 공연이 시작되어도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가 불안해 할 때 남자가 피아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간다. 남자는 묵묵히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면 무대가 어두워지고 여자에게 보내는 영상 메세지가 나타난다. 메세지가 끝날 때 남자는 여자 곁에 꽃을 들고 서 있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한다. 퇴장 할 때까지 아름다운 음악이 깔린다. 이런 줄거리.
  우리 아트홀이 처음부터 사랑고백의 이벤트로 대관하지는 않았다. 극장을 빌려 사랑고백 이벤트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 일이 잡지에 소개 돼 하나 둘 찾아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상적인 공연보다 이벤트가 더 많다. 사장도 싫지는 않은지 대놓고 영업을 하진 않지만 이벤트 대관을 막지 않는다. 이벤트를 위해 공연 대관을 미룬 적도 있다. 사장은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가진 음악 애호가로서 명성을 유지하면서 이벤트 대관으로 실속을 챙기는거다. 본연의 업무인 숙박보다 대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좋은 모텔과 비슷하달까.
  문은 대관 담당자지만 고백 이벤트의 연출을 즐긴다. 남이 시키는 것만 하다가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좋단다. 때로는 대관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넣기도 했는데, 덩치가 짱구 춤을 추기도 했고 불뚝 배를 내민 채 걸그룹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녀가 ‘여자는 이런 것에 약하다’ 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설득 당한다.
  오랫만의 외출, 클래식 음악회, 근사한 곳에서의 식사... 보통 그런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벤트는 통속적인 스토리에 맞춰 진행된다. 유치해서 오글거리기는 해도 당사자들에겐 효과만점이다. 사전 협의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 설정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무슨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하다. 그다지 독창적인 것은 없다. 결혼식에 일정한 패턴이 있듯이 이런 이벤트도 비슷하다. 시작만 조금씩 다르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한 쪽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낭독하고, 울고, 끌어 안고, 또 울면서 끝난다.
  사람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조명이 꺼지고 탑 라이트가 들어오는지, 배경음악이 목소리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바닥에 포그가 살짝 깔렸는지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지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안다. 영화처럼 짜잔~ 나타나는 것은 없다. 모두가 수동으로, 하나씩 대본대로 진행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절로 일이 일어난 것 처럼 일을 마치야 자연스럽다.
  만사가 귀찮은 무대감독은 수당이 느는 것도 아닌데 책임만 늘어 귀찮다고, 조명실 최는 닭살 스러운 행각이 보기 싫다고, 사무실 문은 세상에 자기들 밖에 모르는 사람 시중 드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말한다.
  암전 중에 자리를 이동하던 남자가 넘어져 무대감독이 후래쉬를 켜야 했고, 여자는 애써 못본 척 했다. 어쩌면 이미 감동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 자연스럽지 않았다. 무대감독은 자기가 남자의 목숨을 구했다고, 남자를 부축하다 까진 무릎을 보이며 낄낄거린다. 조명실 최는 그 남자가 평생 쥐어 살거라며 혀를 끌끌 찬다. 사무실 문이 눈을 흘기면서 이미 극장에 올 때 부터 눈치 챈 것 같았다고 말한다. 화장이 과했는데 떠서 이쁘지는 않았다고. 사무실 문은 여자는 이런거 좋아한다고 말한다. 은근히 이벤트를 바라는 것 같아 조명실 최는 부담스럽다. 세상 모든 이벤트 하는 것들 다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 여자에게는 어떤 이벤트가 필요할까. 어지간한 이벤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최는 부담스럽다.
:: 1pagestory.com 한단설 응모작

'by 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궁극의 감성로봇  (0) 2012.05.09
법화경에 마음을 담다  (0) 2012.02.08
며칠 전 꿈에 아버지를 만났다  (1) 2011.06.08
참 멋있는 친구가 있다  (0) 2009.10.05
불편한 관계  (1) 2009.10.01
:
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