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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2. 17:12

인정하고 싶지 않다 사소한 일상2006. 7. 12. 17:12

아아... 내 모습도 이런가...

문득 내 앞에 앉아 있는 O가 부담스럽다. 퍼뜩 술이 깨는 느낌이다. 호감이었던 미소가 갑자기 비굴해 보인다. 배시시 웃는 미소가, 살짝 비치는 내림 말투와 섞인 존대말이 귀에 거슬린다. 소주 반잔도 안 되는 양이 입 안쪽 뒤편에서 역겹다. 배가 불러서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더 이상 마실 수 없다. O는 나에게 술을 먹이겠다고 고집이라도 피울 기세다.

마지막 잔을 건배하고 털어 넣는 내 모습을 O가 빤히 쳐다 본다. '취해서 못 먹는게 아니라 너 때문에 기분이 안 나서 못 마시겠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표정엔 벌써 표현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조금씩 위험선을 넘어왔고 넘어갔다. 내 기분은 벌써 술자리에서 멀어졌다.

O가 나에게 실수한 것이 없으므로 나는 딱히 그를 미워할 만한, 기분 나빠할 만한 구실을 찾을 수가 없다. 단지 O에게서 내가 보기 싫은 내 모습을 발견했을 뿐이다. O의 잘못이 아니다. 나 혼자 기분이 나빠진 것인데 화는 O가 뒤집어 썼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O가 억울해 할만한 일이지만 벌써 그래버린거다. 그가 나보다 약해 보였기 때문일까. 약해 사람 앞에서 강해보이고 싶었던 걸까. 나는 겨우 그런 사람인가.

자신이 가진 힘을 엉뚱한데 쓰고 있는 O가 답답하다. 화를 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O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 짜증을 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야라고 내가 나에게 말을 해야 할 상황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건데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다.

O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말 할 수 없었던 그 날의 술 자리에서

- 화를 낼거면 화를 들어야 할 상대에게 화를 내야 한다.
- 분위기가 벌써 형님 동생 하는 분위기에서 존대를 할거면 제대로 하자.
- 어느새 형님이 되어있는 분위기면 억지스럽게 존대하지 말자. ("나는 모두에게 존대말 쓴다"라는 걸 강조하는듯 행동하지 말자)
- 술 기운에 호기 부리지 말자.
- 내 경험이 모든 현상에 통용되는 진실인것 처럼 말하지 말자.
- 누구든, 술 주정을 받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 되지 말자.

라는 다짐을 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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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