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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9. 21. 01:40

BAR 사소한 일상2005. 9. 21. 01:40

독한 술이었다.
홀짝 홀짝 마셨는데도 목에서 코로, 코에서 눈에까지 찌릿한 느낌이 전해왔다.
바텐더는 천천히 마시라고 말했다.

그렇고 그런, 얘기랄 것도 없는, 완성되지도 못한 문장이 바디 랭귀지와 함께 쏟아졌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은 이해를 방해했고, 집중하지 못한 나는 창 밖으로 시선을 자주 옮겼다.
그에게 전달되는 말은 짧은 단문일 뿐, 길어지는 문장은 말하는 사람 밖에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수작을 거는 손님들에게 바텐더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튕기지도 평가하지도 않았다.
취조실을 바 처럼 꾸미면 진술을 더 쉽게 받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술 취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건성이라도 들어주는 직업이 있다는게 놀라웠다.
바텐더는 가벼운 희롱을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사람들 같다.
가식으로 착한척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말하니까 듣는다고 듣는다.
이야기의 무게나 깊이와는 상관없이, 그냥 "네가 말하니까 듣는다"다.
그런데도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 없이 말하고 싶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바에는 술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러 가는구나 생각했다.
별 얘기는 아니더라도 은근 슬쩍 하고 싶은 말 묻어 내기도 하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 거리기도 하고, 그런 긴장이 풀린 상태를 사는거구나 싶었다.

술마시며 조용히 이야기 할 곳을 찾는 사람도, 그냥 심심한 사람도 바에 찾아온다.
웬지 우아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만 아니라면 친해질만한 분위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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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