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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1. 14:16

칼럼: 비효율의 가치, 앰프의 세계 by 92012. 10. 21. 14:16

비효율의 가치, 앰프의 세계


100원을 내고 100원 짜리 상품을 가져오는 것이 거래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에너지의 세계에서는 100의 재료를 가지고 100의 효용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100을 내고 70 정도만 되어도 고효율이라고 칭찬을 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의 세계다. 그런데 70은 커녕 10도 되지 않는 결과를 칭찬하는 이상한 세계가 있다. 폭포수 처럼 쏟아지는 에너지 속에서 물 한 컵 정도의 결과를 내는 오디오 앰프가 그렇다. 고효율 저비용을 높은 가치로 인정하는 시대에 굳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세계라니, 그 사연이 궁금하다.




앰프는 증폭을 한다.


앰프는 "앰플리파이어(Amplifier)"라는 장비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앰플리파이어는 앰플리튜드(amplitude)를 증가시키는 장비인데, 앰플리튜드는 진폭을 뜻한다. 그래서 앰프를 우리말로 하면, 진폭을 증가시키는 장비 즉, 증폭기라고 한다.


amplifier :

an electronic device for increasing the amplitude of electrical signals, used chiefly in sound reproduction.

- Oxford English Dic.


진폭은 진동의 폭을 말하는데, 진동의 폭은 물체가 진동하는 동안 움직인 거리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시계 추의 움직임을 생각해 보자. 시계추가 좌우로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이 진동이고 시계 추가 움직이는 왼쪽 끝과 오른쪽 끝, 그 사이가 진폭이다. 다이어트 할 때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몸무계 처럼 한 자리에 가만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이 진동이고 날씬 했을 때의 몸무게와 무거울 때의 몸무게 차이가 진폭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아이의 성적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점수가 진동이고 점수와 점수 사이의 차가 진폭이다. 앰프는 바로 이 진폭을 더 크게 만드는 장치다. 말하자면 요요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성적의 부침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라던 바는 아니겠지만, 진폭을 증가 시킨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증폭이라 하면 10원으로 100원 정도는 만들어 내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요요현상이라니 실망감이 크다. 앰프 이론을 들여다 보면 상상한대로의 증폭을 못할 것도 없다. 앰프는 1mV (1/1000) 전기를 넣어 1V를 만들어 내니, 거기에 비하면 10원이 100원이 되는 것 쯤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증폭의 윈리



그림1. 시계 추와 진폭의 관계


그림에서 시계 추의 길이를 10cm, 추가 움직이는 각도를 30도라고 하자. A와 B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진폭이고 길이는 약 6cm 정도 된다. 이제 이 추의 길이를 20cm 로 연장해 똑 같은 각도로 움직일 때, 그 끝을 각각 C와 D라고 하고 C와 D 사이를 측정하면 약 13cm 정도가 된다. 같은 각도로 움직이는 추의 길이를 바꾸면 진폭이 달라지는 것이다.


추의 길이를 길게해서 진폭이 커지면 이것이 바로 앰프다. 진폭을 키우는 것이 앰프라고 했으니 추의 길이를 길게 만들어 진폭을 키우는 것도 앰프라고 할 수 있다. 단, 사전에 정의하고 있듯 앰프는 오디오 같은 전기 신호를 증가 시키는 전자 장치이니 추의 길이를 늘이는 것을 앰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계 추는 진폭과 증폭을 설명하기 위한 예에 불과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전자 장치가 아닐지라도 증폭의 개념을 우리 생활에 까지 확장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전기 신호를 몇 배 증폭하는 계산보다 10원을 100원으로 만드는 기술이 더 흥미로워 보이니까.


추의 길이를 길게 하는 위의 예에서 진폭이 2배 증가했으니 이 앰프는 증폭율이 2배라고 말한다. 증폭률이 2인 앰프는 무엇이든 입력 값을 2배로 키워 출력으로 내 보낸다. 말하자면 “곱하기 2” 기계다. 1을 넣으면 2가 나오고 3을 넣으면 6이 나온다. 10을 넣으면 20이 나오고 100을 넣으면 200이 나온다. 뭔가를 넣어서 더 크게 되어 나오니 전기 신호만 증폭하는 앰프 말고 현실 세계에 사용할 수 있는 앰프가 있으면 좋겠다.




고약한 앰프의 성질, 빈익빈 부익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좋은 것들이 대체로 그렇듯 앰프에게도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우선 무엇이든 크게 만든다는 점이다. 장점을 키워 더 큰 장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좋지만 단점을 키워 더 큰 단점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점수 10점을 100점으로 만들거나 소고기 500g을 5kg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과체중 2kg을 4kg으로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10원으로 100원을 만드는 증폭율 10배인 앰프에 100원을 빌리면 빚이 1000원이 된다. 사채보다 무서운 증폭이다. 하지만 이자가 더 붙기 전에 원금 100원을 갚으면 앰프가 1000원 갚은 셈으로 계산해주니 아주 꽉 막힌 놈은 아니다. 아까 시계 추를 그린 도표에 표시를 하면서 차근차근 따져보자.



그림 2. 도표에 눈금을 표시하고 증폭을 표시


추가 묶여있는 지점이 원의 중심점이고, A와 B를 연결하는 선분 AB와 C와 D를 연결하는 선분 CD를 그려보자. 원의 중심에서 추가 흔들거리지 않고 서 있는 지점을 연결하는 선을 그으면 중심선이 된다. 선분 AB의 길이가 약 6cm 이므로 중심점을 0이라고 하면 왼쪽으로 1cm 단위로 -3, -2, -1을 표시할 수 있고 오른쪽으로는 1, 2, 3cm 지점을 표시할 수 있다. 선분 CD는 길이가 약 13cm 이지만 편의상 12cm라고 하면 왼쪽부터 -6, -5, -4 ... 0, 1, 2 .... 6 까지 표시된다.


이제 중심점에서 선분 AB를 지나 CD에 이어지는 임의의 선을 그린다. 임의의 선이 지나는 선 AB 위의 한 지점이 입력 값이고 임의의 선이 지나는 선 CD 위의 한 지점이 출력 값이다. 예를 들어 중심점에서 선분 AB 위의 포인트 2 지점을 지나는 긴 선을 그리면 선분 CD 위에서는 4 지점 위를 지나게 된다. AB 위의 1은 CD 위의 2로, 2는 4로, 3은 6으로 나타난다. -1은 -2로, -3은 -6 지점에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다. (-2) x 2 = -4 라는 수학적인 계산 방법과도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다.


전기적인 앰프도 원리가 같다. 앰프는 입력값이 기준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차이를 증폭한다. 그림에서 기준점이 0이고 입력 값이 선 AB 위의 한 점일 때 출력값은 선CD 위의 한 점이 된다. 이 점은 중심점에서 입력값 위를 이은 직선의 연장선 상에 있다. 시계 추의 예에서와 같이 + 입력은 커지고 - 입력은 더 작아진다. (- 방향으로 더 커진다)




공짜는 없다


앰프의 또 다른 단점이라면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없이 제공되는 뇌물이 없듯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세상을 구원할 것 같던 앰프도 결국 속내를 드러낸다. 10원을 100원으로 만들어 주는 비용으로 1천원을 내라고 말하는 식이다. 더구나 앰프로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0원을 100원으로 만드는 기술은 독자적인 기술이고, 사용자가 그토록 원하는 기술이니 1천원이 무엇이 아깝냐는 것이다. 웬지 가슴이 답답하고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하고 보니 한편으론 타당한 주장 같기도 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시계 추를 10cm 길게 하는 것은 처음 추를 움직이는 것 보다 5cm는 더 밀어야 하는 힘이 필요했다. 10원을 100원으로 만드는 1천원은 아깝지만 시계추를 10cm 더 길게하고 추를 5cm 더 미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내 지갑에 든 천원은 아깝지만 내 몸 움직이는 수고는 아깝지 않으니 내 몸 보다 천 원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 아,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앰프의 성질을 이용해 내가 증폭하기를 원하는 것과 앰프에게 제공하는 것을 분리하면 억울한 마음도 사라진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시냇물 처럼 나에게 아깝지 않은 것을 제공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아 내는 원리다. 물 100리터와 콩 한 바가지를 주고 물레방아에 주면 콩가루 한 바가지만 돌려 받는다. 물 100 리터는 시냇물이었으니 아깝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콩가루를 얻었다. 물레방아는 그것이 콩이든 팥이든 상관 없었다. 그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는 물 100 리터면 충분했다. 서로 만족하고 아깝지 않은 거래가 성립된다.


오디오 앰프도 비슷한데, 집에서 사용하는 220V 교류를 공급해 30V 정도의 빵빵한 직류를 만든다. 앰프가 원하는 것은 이 직류다. 앰프에게 30V 직류를 꾸역꾸역 먹여 주면서 내가 사용할 오디오 신호를 함께 넣으면(약 1mV 정도의 교류) 직류는 앰프가 사용하고 출력으로 1~2V 교류를 뽑아낸다. 교류니 직류니 하는 말은 어렵지만 결과로만 보자면 220V 교류 시냇물로 30V 직류를 만들어 앰프를 가동한다. 이것은 220V 시냇물로 물레방아를 돌린 것이다. 앰프가 30V 직류를 사용하면서 무엇이든 증폭할 준비가 되었을 때 1~2mV 정도의 신호를 보내면 1~2V 정도의 신호로 증폭해준다. 물레방아에 콩을 넣고 콩가루를 받아 내는 것과 비슷하다. 1~2mV 콩으로 1~2V 콩가루를 얻었으니 나는 1천배 증폭을 얻었고 220V 교류를 앰프에 헌납했다. 앰프는 220V로 30V 전기를 만들어 마음껏 먹으며 1mV를 1V로 만드는 소소한 일을 한거다. 


증폭은 그런 거래의 결과다. 오디오 세계에서는 앰프가 사용할 30V의 직류를 만들어 내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야 앰프가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단지 1천배의 증폭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들어간 신호와 얼마나 똑 같이 생긴, 그러면서도 커진 신호가 나오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앰프가 일하기 좋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넣는다. 효율을 버리고 품질을 얻는 것이기에 비효율도 칭찬을 받는다.




나의 증폭률, 내 인생의 앰프


장작을 피워 물을 끓인다. 가스가 떨어져 비싼 장작으로 물을 끓인다. 비싼 장작이 타는 동안, 위에 무엇을 올려 놓아도 상관 없이 타고 있을 장작 위로 물을 끓이고 라면을 끓인다. 장작의 효율 보다 배고픔이 먼저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반드시 어떤 것이 소비되거나 사용되어야 한다. 대부분은 얻는 것 보다 더 많이 소비된다.


나의 환경, 나의 능력 10원으로 100원의 결과를 내고자 한다면 천 원 정도의 노력이 소비되어야 한다. 비효율적이고 이익을 보는 것 같지 않은 거래처럼 보인다. 에너지 효율 10%인 사람이 50점을 얻기 위해선 500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앰프는 비효율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지 않을까봐 일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비효율이라도 일을 하는 것이 나으니까. 앰프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결과를 내고 있기에 당당하다. 난방기 처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기들은, 그것이 주는 장점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제공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면 부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덜 주고 많이 받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어도, 준 것 이상으로 받기를 바라는 것은 바램일 뿐이다. 적당한 운동으로 놀랄만한 다이어트를 바란다거나, 벼락치기 공부로 높은 성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 앰프로 내 인생을 증폭할 수 있도록 묵묵하게 에너지를 갖다 바칠 차례다.




:: 월간 개벽신문 14호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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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