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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26. 03:50

고집 vs. 자존심 by 92004. 2. 26. 03:50

잡지사에 있을 때다.
매달 3가지 잡지가 나와서 그 당시의 디자이너들은 많이 힘들어 했다.
- 그 중 잡지 하나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재빨리 없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디자이너들이 고집을 피울 때가 있었고,
그런 때면 디자인 이사님께서 중재해주셨다.
- 내가 볼땐 고집인데 그들의 입장에선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때때로 상대편의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영 아니다 싶은데 상대편은 그것을 만드느라 고생을 한 눈치다.
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그 책임이 나에게 있는 상태라면 수정을 요구한다.
바로 그런 상태에 관한 얘기다.
- 결과물에 대해서 내게 결정권이 없는 상태라면 일부러 힘든 말을 할 필요가 없다.
- 디자인에 관한 말 대신, 수고 많았다는 격려의 말을 하겠지.

만든 사람으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만족스럽고 스타일을 고려해서 만든 작품일 것이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꾸라고 말을 해야 하니 만든 사람으로서는 불쾌하다.
만든 사람은 말한다.
"네 맘에 들지 않는다고해서 바꾸라고 말하지 마라!"
그래서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고, 그래서 이러저러하니 바꾸시라고 말하면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당신 뿐이다" 라고 말을 하네.

여차저차해서 결국 고쳐보겠다는 대답을 하더니
기껏 고쳐 놓은게 글자체 몇가지,  색깔 약간, 기타 등등
대충 봐서는 바뀐거 하나도 없어 보이게 바꿔 놓았다.
- 디자이너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고수하면서도 요구사항을 수용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서는 더이상 못 바꿔 주겠다고 한다.
고집을 피워보겠다는 건데... 마음이 답답해진다.

자신의 작품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 인정하겠다.
그렇다면 이 정도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디자이너는 그저 마우스를 잘 다루는 숙련자가 아니라는 것을.
목적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으로 "일을 했다"는 착각하지 않기를,
동료들의 시간을 낭비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해 할 줄 알기를 말이다.
그러므로 마우스를 다루는 일 외에도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과
디자인과 결과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볼 줄 아는 시각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하기 바란다.
그래픽 소프트웨어 몇가지 다룰줄 아는 것으로 스스로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기를 당부한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전에도 이렇게 했는데, 이번에 바꾸면 전체 스타일에서 너무 벗어나게 되어
디자인으로서는 말이 안되는 작업이다"고 말하는.
그렇게 말하는 "전에 했던 작업"을 할 때는,
"이번에는 급하니 대충 하고, 다음번에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급하니 대충하고, 다음번에는 지난번에 했던 대로 하고,
그 다음에는 그게 스타일이니 쭉 그렇게 하자는거다.

글자 하나, 폰트 하나를 살짝 바꾸어도 느낌이 확 달라질 수 있다.
색깔에 아주 약간의 변화를 주고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물론 그런 디자인이 있다.
정말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런 것을 못 알아 본다면, 그렇다면 내게 보여주라.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도록 보여 달라는 말이다.

문제의 페이지가 나올 때 마다 독자들에게
"이 페이지는 이런 의도로 디자인 되었으니 고래해서 보십시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정이 필요한 작업이있고, 다시 해야 하는 작업이 분명히 있다.
그 두 가지 작업은 다른 일이어서 혼동하면 서로 실망하고 오해하게된다.
- 고쳐달라고 했는데 완전히 바꿔 버리는 것도 오바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매달 때맞춰 잡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좋은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좋은 디자인을 위해 잡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런 목적의, 디자인 잡지가 있기는 하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고객의 취향과 프로젝트가 원하는 취향에 대해
서로 구별하고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 그리고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의사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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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생각의 점프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동차 번호판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잡지사 때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들(번호판 변경을 담당한 자)도 답답해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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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