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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5. 10. 01:38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 by 92004. 5. 10. 01:38


오래전... (10년? 아니면... 8~9년 전? 암튼, 그 정도 시기)
내가 서울에서의 첫번째 뮤지컬 공연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다.

무대미술을 하는 선배의 도움으로 극단에 소개가 되고, 내가 음향을 담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단체에 합류해서 책임자로 일을 맡게 되는 것은 많이 조심스런 일이다.
첫번째 결과로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공연(공연은 일주일인가 보름인가 계속되었다)에서의 나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공연 리허설 단계에서 부터 많은 시간을 참여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에 긴장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공연이 치뤄지던 초반에 사람들은 나에게 제각각 다른 주문을 해왔다.

연출은 음악이 너무 커서 대사가 잘 안들리는 것 같다고 했고,
음악감독은 음악이 너무 작아서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고 했다.
공연 기획자는 기획자대로 이것 저것 주문을 했다.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 주문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_-;
연기 하시는 분들도 자기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대표님과 했던 얘기.

"종회야, 힘들지 않니?"
"아, 아뇨... 재미있어요."
"음향은 잘 돼? 일하기 어렵지는 않고?"
"네, 그냥... 뭐... 장비가 많아서 재미도 있고... 저는 좋아요"

아마도 그런 얘기들을 했을거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떻게 그 당시의 대사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극단 대표님은 나보다 10살 많으신 여자분이다.
항상 웃는 표정을 하고 계시는... 아직 미혼이시고, 동화 작가이시고...
극작가이자 연출자이기도 하다. 평소에 말씀하시는 분위기가 "동화"다.

"어제, 형들 얘기 들어 보니까 음향이 좀 크다는 얘기가 있던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저는요... 그다지 크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아, 어쩌면 뒷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분위기가 업되는 타이밍이라... 좀 커지긴 하거든요"
"응, 그랬구나..."
"공연때 연출 선생님이 옆에 와 계시면, 공연 중에 음악이 크다고 하세요.
그래서 좀 줄이면 좀 있다가 음악 선생님이 오셔서 음악이 너무 작다고 하시구요.
공연을 잘 아시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라... 그대로 해드리고는 있는데...
의견이 통일이 안되어서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대표님은 잠깐 무대를 바라보다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남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응... 종회야 있잖아, 나는...
자기 주관도 없이 남의 말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보 같은 사람과는 일하기 싫거든.
너는 안 그렇지?"

동화 같은 표정을 하고, 동화 같은 말투로, 미소 지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거다.

내가 담당한 일에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거다.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얘기했다고 해서, 누군가 밀어부쳤다고 해서,
누군가 결정을 해 주었다고 해서 내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이름 걸고 하는 일에는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내가 결정한 일이되는거다.
그래서 나에게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고.

그 일이 있은 뒤로,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소신껏 공연을 치뤄냈고,
대표님과 연출선생님으로 부터 계속 같이 하자는 제의를 듣게 되었고,
그래서 극단에 충성을 다짐하며 한식구가 되었다.

우리는 많은 공연을 같이 했고, 많은 녹음을 했고... 많은 장비를 사들였고... 그랬다. ^^

아직도 극단 소속 단원이지만, 요즘은 떨어져 지낸지 꽤 되었다.
얼굴을 본지도 한참 된것 같다.

그때 대표님이 공연장에서 해주신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한마디가 되지 않았나... 피식 피식 웃으며 그때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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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