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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6. 11. 01:24

오목거울과 볼록거울 by 92004. 6. 11. 01:24

내 손가락의 무딘 감각과 고만고만한 상상력으로는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
거울속의 내 모습을 나라고 믿는 것은
내 눈으로 보던 것을 거울을 통해 똑 같이 볼수 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거울을 보았을 때의 생경함은 기억나지 않으나
어린 아이들과 강아지가 거울 앞에서 놀라는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보는 거울과 당신이 보는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는 빨간색과 당신이 보는 빨간색이 다를 수 있고,
하나의 장미를 함께 보아도 인식하는 실체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빨간색도 이름이고, 장미도 이름일 뿐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빨간 장미다" 라고 말을 한다. 약속의 말이다.
그리고 나처럼 그것이 약속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선척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색깔을 말하는 단어를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색깔과 내 눈에 보이는 색깔이 물리적으로 같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서로가 표현하는 색깔은 점점 같은 것이 된다.

각자의 머릿속에 서로 다른 색깔이 들어 있을지 몰라도 '인식하는 색깔'은 같다.
그것은 경험으로 보완이 되며 서로 비슷하게 맞춰지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함께 경험하는 것이 많을 수록 공감하는 것도 많아진다.
인식하는 색깔도 점점 같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언어에 나타난 내 모습을 본다.
거울을 보듯, 그들의 표현에 나타난 내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 믿는다.
물론, 어떤 표현으로도 내 모습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자.
그들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상관하지 않아서 믿을만하니까.

60년 빼곡히 쌓인 사연도 사망진단서의 짧은 단어로 표현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망진단서 같은 그들의 표현이 못마땅 하더라도
딴 사람의 사망진단서를 보듯 그 뒤에 숨은,
내 기억과 다른, 그들이 말하는 나의 사연을 읽어 낼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떤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말고 고마워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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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