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05. 7. 25. 01:46

야심만만 사소한 일상2005. 7. 25. 01:46

저녁 시간에 같이 밥 먹자는 전화가 왔다. 막 식사를 끝낸 참이라 식사가 끝난후 연락을 달라고 했다. 회사를 기준으로 딱 반대편 거리에 있는 동료다. 회사 근처 4거리에서 만났다. 집 나설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가 한 두 방울 내렸다. 가볍게 맥주 한잔 하기에는 동네가 화려했지만 일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적당한 술집을 고르는 동안 찰랑거리는 생머리에, 어깨를 드러내고 배꼽과 등판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은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자 두 분이 모퉁이를 돌때마다 마주친다.

얼음 맥주잔에 시원한 맥주가 나왔다. 맥주 집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세 테이블만 손님이 있다. 어제 밤만 하더라도 더 많은 손님이 있었겠지. 어찌된 일인지 남자 손님은 우리 테이블 뿐이다. 화사하고 밝은 웃음을 가진 여인들의 어깨엔 얇은 끈만 올려져 있고 미끈한 다리가 눈길을 끌었다. 노골적으로 쳐다 볼만한 배짱도 없어 시선은 천장으로 창 밖으로 방황한다. 쳐다보는 즐거움 보다 변태처럼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거다. 하여튼, 본능을 속이고 앉아 있는건 분명했다. 노출의 계절이기는 한 모양인지 창 밖에도 비슷한 차림의 여자들만 보인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한동안 대화는 겉돌았다. 시선은 불안한듯 안정되질 못했고 어느 순간 다른 테이블의 여자를, 창 밖의 여자를 향했다 돌아왔다. 길거리에서 등판이 매끈하던 그 여자들을 볼때부터 모르긴 몰라도 같이 술마시지 않겠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번째 잔을 마실 때였나, 내 잔에만 얼음이 떠 있다며 여자 알바에게 트집 잡으려 액션을 취하던 동료와 웃으며 오늘은 여자 얘기로 토크쇼가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의 역사와 그들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때의 에피소드, 과거의 어떤 사건과 그 시기에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 등은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준다. 오늘은 여자 이야기가 도화선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했던 데이트, 잘 안 풀렸던 여자와의 관계, 주변 여자들이 들려준 자신의 평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우리가 여자들과 데이트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앞으로 어떤 시도를 해볼 것인지 등등 많은 얘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누가 누구와 경쟁관계에 있고 그래서 사이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며 1년이 넘도록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던 후배가 지난주에 "형"이라고 부르더라는 이야기 같은 회사 이야기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오래 이어지는 얘기거리는 아니었다.

선량한 웃음을 가진 동료다.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쳐다보는 노골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어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기도 하지만 - 뭔가에 열중하기도 한다. 모두가 인정할 만한 한 분야를 책임지고 있지만 오히려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무시를 당하고 있다. 실력은 있지만 그를 평가할 사람들과 대적하는 위치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비주류 라인의 인물이 됐다.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선 것이다. 그가 가진 선량한 웃음이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움보다 안쓰럽다.

12시가 넘자 서빙하던 분이 옷을 갈아입고 퇴근 준비를 했다. 분홍색 니트를 입었다.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어려보였다. "흰 남방 입었을때가 더 섹시하죠?" 멀리서 퇴근 준비를 하는 알바를 쳐다보며 물었다. 회사 생활 얘기며 사는 이야기,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알바에 대한 얘기보다 더 시급한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두 총각은 공범자의 미소를 지었다. 흰 남방이 최고여~


 

'사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복되는 레퍼토리  (0) 2005.08.01
구휘중 수원에 나타나다???  (0) 2005.07.31
뭐하셈?  (0) 2005.07.22
기나도 아가씨  (0) 2005.07.14
생각과 다른 하루  (0) 2005.06.30
:
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