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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 00:59

중년커플 사소한 일상2005. 5. 2. 00:59

커피숍은 낮 시간에 손님이 없어서인지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았다. 시원한데서 따뜻한 커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서 두어시간 보내려고 했던 계획이 흐트러졌다. "길건너 맥도날드로 갈걸 그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서빙 누나는 벌써 커피 주문을 받아갔다.

이 가게는 "주인 아주머니"로 추정되는 준 할머니(젊은 할머니)와 딸로 보이는(혹은 동생일 수도 있는) 아줌마가 일하고 있다. 서빙하는 알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도 "다방" 느낌이다. 다방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서빙 누나가 내 테이블에 같이 앉아 수다를 떨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과, 큰 어항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덮게가 씌워진 의자가 아니라 2인용 소파에 쿠션을 끼고 앉아 있다.

잠시 후 에어컨이 켜지고, 한 두 테이블에 손님이 더 들고, 내가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쯤 마주 보이는 방향으로 한 테이블 건너에 중년 커플이 앉았다. 중년이라 말하기에는 좀 젊고, 젊다고 말하기에는 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 커플은 동네 유흥가에 어울리는 인상을 가졌다.

호리호리한 아저씨는 머리스타일도 깔끔했는데 이발소에 누워있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한가한 오후에, 동네 목욕탕이나 이발소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백수 아저씨 모습이다. 한때는 멋있었을 과거가 아직 얼굴에, 어깨에, 등짝에 남아있다. 한쪽 팔을 소파에 걸쳐 놓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목소리에 윤기가 흐른다.

아줌마. 까만 색 옷을 입었다. 드레스 같은 느낌을 주는, 어른들 특유의 옷인데 드레스는 아니다. 얼핏 레이스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편해보이기도 하는 그 옷은 의상실의 쇼 윈도우에 걸려있을 법하다. 연서시장 입구에, 옷걸이를 길에까지 내놓고 팔고 있는 옷가게는 어른용 케쥬얼을 판매한다. 격식차린 정장과 스포츠웨어 사이, 편안함과 격식을 동시에 갖춘, 애들은 입지 않을 옷을 파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옷, 아줌마의 옷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아줌마는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몸을 앞으로 기대고 있다.

아까부터 음악이 늘어진다. 서빙 누나가 프림과 설탕 세트를 가져가면서 "음악이 이상한거 같죠?" 라고 묻는다. "테입이 늘어졌나봐요" 라고 대답했다. 내가 준 테이프 틀어달랜 것도 아닌데 내가 미안했다. 묘한 질문을 던지고, 길지도 않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서빙 누나는 돌아갔다.

잠깐 졸다 깨어나는 순간인데, 중년 커플이 뽀뽀를 하고 있다. 아니, 했다. 등 뒤쪽도 아니고, 내가 정면으로 보고 있는 방향이다. 그 커플과 내 자리 사이에는 테이블 한 세트가 비어있다. 목소리도 다 들리는 가까운 거리. 아줌마는 테이블 위에 올라타듯 건너편으로 몸을 넘겨 어중간한 자세의 아저씨와 뽀뽀를 했다. 자연스레 내 고개가 다른쪽으로 돌아간다. 쪽쪽~ 소리가 났다. 불편한 자세일텐데 소리는 경쾌하다. 아줌마 머리는 염색을 했는지 새까맣다. 졸다 깬 몸이 기지개를 피는 동안 건너 테이블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다시 하자며 아줌마 아저씨가 웃는다.

커피잔을 내려 놓는데 접시와 잔이 닿는 소리가 부담스럽울 정도로 크다. 다리를 쭉 뻗고, 등을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잠이 들것 같다. 눈이 무겁고 피곤하다. 뽀뽀는 아저씨가 했는데 내 몸이 피곤하다. 테이블을 넘어선 것은 아줌마인데.

커피값을 계산하는데 CD가 튀는지 음악이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다.

"음악이 이상하죠?"

거스름돈을 주면서 서빙누나가 물었다. 그녀가 꺼내든 CD 바닥에는 굵직굵직한 생활기스와 오래된 커피 자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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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없으므로, 불륜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무죄추정 원칙이라 하나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는 한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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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