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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27. 14:44

집행자와 피집행자 by 92004. 7. 27. 14:44

전쟁중에 무수히 많은 사람을 몰살시킨 사람은,
나중에 그것을 평가 받는 시점에서
"나는 단지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몰살당한 이유는 적국의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데모하는 군중들을 힘으로 제압하면서
"나는 단지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불법적인 데모를 했고 넘지 말라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6학년 선도부 학생이 더 어린, 교칙위반 학생들에게 손찌검을 한다.
"얘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한다.
맞는 아이들은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맞는다.

집행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반복한다" 라고 말한다.

피집행자들은 마음 한켠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잘못한 것이 있으니 뭐라 대들지도 못하거나,
힘으로 상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침묵한다.

잘못한 것이 있는데도 감히 억울한 마음을 갖는 것은 집행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피집행자가 집행에 항의할 수록 집행자가 피집행자에게 가하는 모욕은 필요이상이 되고 만다.
모욕의 바탕은 "명분"에 있다. 죄를 지은자와 처벌하는 자.

피집행자는 집행의 순간이 다가올 수록 죄의 반성여부와 상관없이
"파렴치한" 이 되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게된다.
이 시점에서 집행자는 피집행자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보호활동을 집행자가 용납하지 않으면,
피집행자는 구석에 몰린 생쥐꼴로 발악하게 되고, 집행자는 가학적 흥미를 일삼는 변태가 된다.

파렴치한 짓을 한 사람을 파렴치범이라고 한다.
집행자는 피집행자로 하여금 파렴치한 짓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지,
파렴치범인 인간을 처단하는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이 아니다.

집행자라는 것이 개인의 우월함이나 존귀함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집행자는 사회질서를 대신해는 역할일 뿐이다.이것을 망각할 때,
피집행자는 집행자의 행동에 반감을 품게된다.

피집행자의 침묵은 '인정'이나 '받아들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후의 반항,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집행자가 오기로 말하는 "나는 잘못 없어.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는
폭력을 즐기고, 힘의 집행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부끄러운 구호에 불과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동"으로 시작한다.
멍자국을 안겨주는 것으로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저 사람이 잘못한거니까"라는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처단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이 정의의 사자라도 된 듯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주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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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