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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17. 16:37

초여름 저녁, 기다리는 시간 사소한 일상2007. 6. 17. 16:37

버스 정류장 이름은 "종로약국" 이었지만 종로약국이 보이지 않았다. 여긴 한때 종로약국이 있었던 곳이었던 것일거다. 종로도 아니고 종로약국도 없는 종로약국 정류장 근처에 차를 세웠다. 아니, 세우고 보니 그런 곳이었다.

이곳은 연서시장의 끝자락과 새장터 마을이 시작되는 경계지점.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줄을지어 서있다. 규모들이 고만고만해서 서로 사장님이라 부르는 것도 동네를 벗어나면 민망할지 모른다. 시장쪽에서 마을로 향하는 방향으로 차를 세웠으니 나를 마주보는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은 마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고 내가 등을 보는 쪽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귀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지금은 8시 반. 9시에 만나기로 한 후배가 9시에 출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에서 아직 출발도 안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이왕 만나기로하고 왔으니 무작정 기다리기로 한다. 조수석 의자 뒤편에 꽂아 두었던,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중요하지 않고 천천히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 책을 꺼내 들었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졸음이 다가왔다.

아직 저녁 끼니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 뭔가 먹을 거리가 필요했다. 주유소에서 받은 광천수는 맛이 이상했다. 소금물이라도 마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건너 피자투어 간판에 써있는 "테이크아웃 라지 한판 5천원"이 눈에 밟히는데 지갑엔 돈이 없다. 동네 가게들이 아무리 민망한 규모라도 라지 한판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짜증은 배가 고파서 생기는 증상일 것이다. 나에겐 광천수 1병뿐.

이미 늦어버린 후배들과의 약속으로 마음 속에선 여러차례 불꽃이 일다 사그라들었다. 많은 변명을 들었고 변명에 대응한 화를 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기다리고 있는 지금 마음만큼 화도 나지 않을 것이다. 다소 서운한 마음쯤은 얼굴을 보면 사그라들 것이다. 그만하면 됐다. 그들도 달려오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니 웃으면서 맞이하자... 그렇게 되어야 좋을 것이다.

길건너 버스 정류장 안내판엔 3번째 커플이 떠났고 또 기대 서 있다. 직장 동료인듯한 아줌마 3명이 한참 수다를 떨다 버스에 올랐다. 종점이 가까운건지 버스들은 대체로 텅~ 빈채로 나타났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눈처럼 내렸다. 오른쪽 창 밖에서, 아이가 빨리 따라오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뒤돌아서서 큰 소리를 냈다. 마주 걸어오는 청년은 구렛나루와 턱 수염이 연결된채 화장이라도 한듯 뚜렸한 얼굴을 가졌다. 두손에 짐을 든채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여자의 발걸음이 무겁다. 신호에 걸린 냉동차는 답답한듯 길을 건너는 여자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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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