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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
이덕일 지음/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유성룡은 선조 시대의 신하로 영의정을 지냈고 임진왜란을 겪었다. 이순신을 천거했다.

이 책을 보면서 역사는 참 많이도 반복되는구나 싶었다.

누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 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내가 가진 것을 잃게 될까봐 걱정하고, 걱정이 커져서 남을 해치고, 내 앞의 이익을 위해 모두의 이익을 해치는 일들은 사람이 사는 동안 변하지 않고 늘 진행되는 일인가 보다.

선조 임금이 내 상사를 닮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성룡을 닮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유성룡이 있던 시대에 살던 다른 누군가를 또 닮았겠지. 이순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원균을 닮은 사람도 있고, 권율을 닮은 사람도, 중국 장군을 닮은 사람도 있다. 하는 일도 그렇지만 그림으로 나타난 외모까지 닮았으니 관상학이 맞기는 맞는건지. 아니 어쩌면, 마음을 비슷하게 쓰는 사람들 끼리 외모가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결정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나의 결정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하는 역사서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도 의연하게 처신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내 눈앞의 이익을 쫒지 않고 사는게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었다. 내게 이런 일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임진왜란 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선조에게 보고를 하는 신하 2명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 보다, 내가 받아들인 상황으로 재구성하자면 이렇다는 얘기다 -

사신 중에서 대표겪인 사람은 외교관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화내지 않는다. 좋게 좋게 처리하고 살아서 돌아와 보고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국가대표로서의 부적절한 선택을 하고 비굴하지만 살아 돌아와 보고를 하는 선택을 했다. 돌아와서는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를 한다. 사신 중에서 부대표겪으로 다녀온 신하는 대표가 비굴하게 구는 것을 보고 반대로 행동한다. 외교관으로서 국가의 체면을 살리는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당당한 요구를 하고 그 선택은 적절했다. 그렇지만 다녀와서 사신단의 대표와는 다른 의견을 보고한다. 일본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므로 전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함께한 대표가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더욱 반대로 얘기했을 수도 있다. ‘남자답게’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선조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도 이미 여러 상황증거가 있었음에도 믿고 싶은 정보를 믿는 습성에 따라 이 보고에 더 가치를 두고 전쟁준비를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쟁준비야 어떻더라도, 내 상사의 행동이 맘에 안들고 어리석어 보여도 그 행동에 반항하는 의미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의견을 표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일부러 반대쪽을 선택하지야 않겠지만 나는 뜻이 다르다 하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이야기. 적군과 대치하면서 도망치는 부하들을 처분하는 장수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성을 지키는게 여러 모로 나은 선택이었지만, 자신이 가진 병사들이 기병이 많다는 이유로 성을 버리고 들판을 싸움터로 삼았다. 성은 쉽게 적들에게 넘어갔다. 전투의 장으로 선택한 들판은 뒤에 강이 있었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물러나지 않고 죽기살기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들판은 물이 많아 뻘 같은 곳이었다. 기병이 말을 타고 뛰어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다. 기병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장수들은 싸움터를 잘 못 선택한 것이다. 성을 버리지 말고 지키자고 했던 부하들을 겁 먹고 싸우지 않는다고 죽이려고도 했다. 자신의 잘 못된 판단으로 아군에게 불리하고 적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것 외에도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들이 일본군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만 듣고 도망친 성이 많았다. 겁먹고 도망치는 장수가 유독 자신의 부하들에게만 엄격해 부하의 목을 베는 일이 많았다.

소심하고 실력없는 중간 간부들이 일만 생기면 책임을 회피하고 윗 사람에게는 한 마디도 못 하면서 아랫사람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큰소리 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자신은 의연한 장수처럼 행동하지만 앞 뒤 상황을 고려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들이다. 단지 자신만 아니라고 말한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로 사건을 바꿔 기억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는 왜 이렇게 비겁하고 얍실한 사람들에게 관대한지 모르겠다.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힘들게 산다. 그래서 뭐 남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충성을 다하고 버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으니 도저히 그 처럼 행동하기는 쉽지 않겠다. 숙연해지고 죄송할 따름이다.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 역시 비겁하고 얍실한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나의 기득권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응?)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역사다. 시험용 역사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역사로, 나를 돌아보는 이야기로, 정의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할 역사다. 그래서 불편한 우리의 역사를, 해피엔딩이 아닌 이 역사 이야기들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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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