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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3. 11:41

BOOK: 자기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읽고보고듣고2011. 11. 3. 11:41

자기 앞의 생 - 8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작가 로멩가리의 가상 인물인 에밀 아자르가 쓴 책” 이라는 상황이 맘에 들었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대 작가 로멩가리, 그가 만든 가상의 인물인 에밀 아자르도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이미 유명한 작가가 일부러 상을 받으려고 그러지는 않았을텐데 무슨 사연인가 궁금했고, 어떤 소설인가도 궁금했다. 그것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9~10살 정도 되는 아랍 소년과 아이를 맡아 키우는 유태인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창녀 출신으로,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 갔다온 적이 있어 외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창녀 일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년은 그런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 중 하나로, 아이답지 않게 행동이나 말투가 어른스럽다. 나중에 나이가  많았다는게 밝혀지긴 해도, 그 나이에 하는 보통 아이들 보다 2배는 어른스럽다. 소년이 겪는 여러가지 이야기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뭔가 재미없는 책 처럼 느껴지지만 재미있는 책이다. -_-;

책 후미에 “에밀 아자르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한 챕터가 있었다. 별도의 책인데, 나처럼 로멩가리와 에밀아자르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첨부해 엮었나보다. 로멩가리가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게 된 이유와 들킬뻔한 사건들, 비밀을 알면서도 지켜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서처럼 써 놓았다.

“남들에 의해 정의되는 내 모습 ” 때문에 더 이상 내 글이 새롭게 읽히지 않고, 비평도 없다는게 새 인물을 창작하게 되는 이유였던 것 같다. 일부러 비평을 바란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당시 프랑스 문학비평가들을 비웃는 내용도 있어 명성에 덧 씌워진 이미지 때문에 작품이 포장되는 것 자체가 싫었다고 볼 수 있겠다.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서라도 눈에 띄기를 바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 때는 과한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그걸 원했고 또 해 냈으니 부러울 따름이다.

TV 드라마에 꼭 나오는 장면. “너 답지 않아!” 하는 대사에 꼭 “그럼 나 다운게 뭔데?” 하는 장면. 너무 식상하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그 대화가 생각났다. 남들에 의해 정의되는 내 모습이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나는 얼마나 그런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 작가는 그런 이미지에 얼마나 부대꼈으면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의문이었을거다.

때로는 남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에서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도, 내가 그런걸 원했었나 하는 솔직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추구하는 모습과 다른 이미지로 비쳐질때 오해를 받은 것처럼 불쾌하기도 했고, 나를 이해 못하는 것들이라고 한심해 하기도 했다.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과 내가 되어 있는 모습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라면서도 가급적이면 내 능력보다 좋은 모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니까. 내가 원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평가를 들을 때 그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봤자 니 생각이야~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마음 속에 남는 앙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명성이나 권위에 눌려 제대로 보지 못하고는 일이나, 쉽게 인정해 버리고 마는 풍습에 대한 조롱으로도 느껴진다. 나 역시 책 내용 보다 어떤 책인가에 더 흥미를 가지고 미리 인정하고 있었으니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도 되는구나, 실력이 있는 사람은 이름이 어떻든 인정을 받는구나, 잘 하는 사람은 잘하는거구나, 그런거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잘난 사람의 잘난 이야기인것도 아닌데 말이다. 울컥하는 뭔가가 있지만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니다. 기쁘다 슬프다로 정의하지 못하는 뭔가 애매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그런 감정을 만드는 책이다. 책 내용과 책 배경이 완전히 별개로, 책의 배경 만으로도 소설 한편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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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름